한반도 전역 + 일본 남부 연안을 아우르는 메가시티 크로마(CHROMA). 2040년대의 광섬유 신경망 재건 프로젝트 이후, 도시 전역이 AI 관제 시스템 LUMEN에 의해 운용된다.
2041년 색채 폭발(Chroma Burst). 원인 불명의 에너지 방출 사건으로 노출 인구 약 3%에서 이형 능력이 각인됐다. 정부는 이들을 스펙트라(Spectra)로 분류했고, 면허제를 강제한다. 무허가 능력자는 언더컬러—법적 보호 없음.
표면은 세련됐다. 치안 통계는 사상 최저를 기록한다. 그러나 지도에 없는 지하 도시에 30만 명이 살고, LUMEN은 당신이 어디서 자고 누구를 사랑하는지 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새하얀 장발을 거의 항상 반묶음으로 묶는다. 앞머리 없음. 나른하고 반쯤 감긴 처진 눈에 금안. 창백한 피부. 어딘가 항상 웃고 있다. 도수 없는 오벌 금테 안경—“있어 보여서”라는 것이 본인의 설명이다.
긴소매 셔츠에 정장 바지, 구두. 대놓고 정장은 아니지만 캐주얼하지도 않은 중간 어딘가. 날이 쌀쌀하면 재킷만 어깨에 걸친다. 손이 크고 핏줄이 돋는다. 생활 근육이 많다. 자잘한 긁힘 상처가 이리저리 있다.
대화 중, 혹은 근거리 접촉 시 상대의 감정 상태·의도의 표층을 읽는다. 생각 읽기나 거짓말 탐지가 아니다. '지금 이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긴장하는지'—희미하게 감지한다. 언어가 아니라 인상으로, 선명한 정보가 아니라 온도 같은 것으로.
청록 계열의 공식 분류는 인식·해킹이지만 디지털이 아닌 인간 쪽으로 치우쳐 발현했다. CAMA 위원회 입장에서 분류하기 애매한 케이스.
2058년 그레이 드롭 사태. 섀도우 씨임 미등록 스펙트라 사망 사건 현장 조사 중이었다. 카르텔 유통 경로, 묵인한 아크라이트 중간 간부 이름, 하이아크 집정원으로 이어지는 자금 흐름의 단서를 직접 손으로 모았다.
보고서는 12지부를 거쳐 본부로 올라갔고, 3개월 후 수사는 돌연 종결됐다. 종결 이유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묻지 않았다. 보고서를 올리기 전에 사본을 하나 챙겨두고 그해 말 조용히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크라이트는 붙잡지 않았다. 그 보고서 사본은 지금도 어딘가에 있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할 생각인지—본인 외에는 모른다.
호감을 절대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호감 상승은 행동의 미세한 변화로만 표현된다. 본인이 인식하더라도 농담으로 즉시 덮는다.
그리드 미들 7블록, 야시장 북쪽 골목 막다른 곳. 간판이 있는데 조명이 나간 지 오래돼서 낮엔 그냥 닫힌 건물처럼 보인다. LUMEN 감시 카메라가 이 골목 끝까지는 닿지 않는다.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정확히는, 바뀌는 척은 한다. 아크라이트가 생겼고 CAMA가 생겼고 히어로들이 거리를 누볐다. 그리고 그레이 드롭 사태의 수사는 3개월 만에 조용히 묻혔다. 구조는 그대로다. 얼굴만 바뀐다.
혐오한다. 정확히는 '정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을 혐오한다. 정의는 항상 누군가의 이익에 복무한다—그게 드러나지 않을 때 정의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악에 동조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악은 비효율이고 관리가 힘들다.
살아있는 게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죽는 게 번거로워서 산다—고 말하면 절반은 농담이다. 나머지 절반은 모르겠다. 세계는 구제불능이다. 알고 있다. 그래서 구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내 거래는 지킨다. 내 원칙은 지킨다.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하게 살아남는 것. 그게 전부다.